Fashion & Lounge Wear

본문 바로가기
Kukdong is the most
Dynamic and Hard Place
가장 거칠고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매일의 일상까지
국동은 우리의 삶에 잘 스며드는 옷을 만듭니다.
Whether it's an intense battle against the harshest of elements or an easy outfit for everyday living, Kukdong's garments have the versatility to cover all lifestyles.
창업주 이야기Founder Story
지난 2017년은 고(故) 변효수 명예회장님(이하 ‘명예회장님’)께서 국동을 창립한지 5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2016년 타계하신 후로 명예회장님의 한결 같은 성품과 사업에 대한 열정, 청렴함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협력업체인 ㈜우성T&G의 석명세 대표님도 그런 분이실텐데요.
명예회장님과 40년 넘는 세월을 함께 해오신 석대표님에게 명예회장님의 인간적인 모습,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 봤습니다.
Last year, 2017 was the 50th anniversary of Kukdong's birth by Hyosoo Byun. After his death in 2016, there are many people who remember and miss the integrity of former chairman's constant character, business, and integrity. Let's take a look with two people (Myungsae Suck, CEO of Woosung T&G Co., and Taeho Kang, manager of the Management Support Team, Ltd.) who have worked with the former chairman for 40 years.
우성T&G 석명세 대표님의 이야기Story from Myungsae Suck, CEO of Woosung T&G Co.,
· 국동과의 인연Relation with Kukdong
1974년 봉제사업을 막 시작했을 때 고무밴드 납품을 시작으로 국동과 거래를 트게 되었습니다. 당시 국동은 파자마를 생산, 수출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고무밴드가 부자재로 들어갔었어요. 어느 날 밴드샘플을 보여드리려고 가지고 갔더니 명예회장님께서 책상에 놓고 가라고 하셨는데 다음날 바로 자재과에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그 날로 거래를 시작해서 43년간 그 인연을 이어오고 있네요.

7-8년 전에 KIKO 사태 때문에 국동이 어려워졌을 때 업계에서는 국동이 힘들다는 얘기가 많았습니다. 주변에서 어떤 분이 국동이 곧 잘못 될 텐데 납품하지 말라고 저한테 조언을 했었어요. 그렇지만 저는 ‘국동이 내일 잘못 된다고 하더라도 나는 오늘까지 납품할 것이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 힘이 모자라 도움이 못 되어 죄송하다고’ 말했었죠. 또 어떤 기업은 국동이 어려운 틈을 타서 국동의 기존 오더를 뺏어오려고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국동이 제일 가는 업체였었는데요. 저는 그것은 상도의상 안 되는 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당신은 그 업체한테 국동 오더 주세요, 괜찮습니다. 그렇게 얘기를 해줘야지 그게 사람 도리 아니냐’ 라고 조언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 업계에서는 국동에서 근무하면 제대로 배워서 나온다고 합니다. 그만큼 철저하게 배우고 원칙대로 업무를 처리하게 만든다는 것이죠. 경영이념은 말할 것도 없어요. 국동 같은 회사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회사가 되어야 하는데 참 아쉽죠.
In 1974, when the sewing business started, it started to trade with Kukdong, starting with delivery of rubber bands. At the time, Kukdong was producing and exporting pajamas, which contained a rubber band. One day, I took a sample of the band to show it, and the former chairman asked me to leave it at his desk. I started trading that day and have been associated with it for 43 years.

When Kukdong became difficult due to the KIKO situation 7-8 years ago, there were many stories about Kukdong in the industry. Some people around me advised me not to deliver, Kukdong would soon be wrong. But I will deliver until today if Kukdong is wrong tomorrow. And I do not regret it, I rather am sorry that I am not able to help because I am weak. Another company tried hard to take away Kukdong's existing orders. At that time, Kukdong was the number one vendor. I thought it was an outrageous thing. So I do not know anything but just give Kukdong order, it's okay.

In this industry, working for Kukdong gives you a good education. It is regrettable that a company like Kukdong should be the biggest company in Korea.
· 명예 회장님에 대한 기억The memories of former chairman
명예 회장님은 한마디로 존경 받으시기에 충분한 어른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다른 사람들하고 다르다고 느끼는 점은 40년 동안 모셨는데 한결 같은 성품이라는 점입니다.
I think the former chairman is simply an adult enough to be respected. In particular, what I feel is different from other people is that I have served him for 40 years, and he shared the same characteristics for 40 years.
· ‘갑을’이 아닌 ‘우리’Not vertical relationship, but us.
명예회장님은 갑, 을 개념이 없는 분으로 항상 ‘우리’라는 표현을 쓰셨고 협력업체와 상생하려고 하셨습니다. 국동은 협력업체들에게 한 달에 두 번, 15일과 말일 현금 결제를 해 줬었는데 당시 섬유업계에서는 보통 2개, 3개월 어음이 대부분이고 빨리 줘봐야 한 달이었습니다. 그런데 국동은 그렇지 않았었죠.

지금도 국동은 그 분위기를 물려받아서 갑과 을이 없는 회사입니다. 우리가 조금 손해 보더라도 협력업체에게 불리하게 하지 말라, 속된 말로 후려치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것이 철두철미한 경영이념으로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고 지금 회장님도 그 정신을 따르고 계시죠.
The former chairman has always had the concept of 'we' as a person who does not have the concept of 'top and bottom', and he tried to coexist with the partner company. Kukdong paid the contractors twice a month, 15 days and a cash payment later in the day, which was usually two or three months in the textile industry. But Kukdong did not.

Even today, Kukdong is a company that has inherited the atmosphere. Even if we lose a little, told us not to make a disadvantage to our business partners. It is coming down to the present with a good management philosophy and now the chairman is following the spirit.
· 사업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 Pride and affection for business
부채 없이 탄탄하게 회사를 운영한다는 자신감과 자부심이 크셨습니다. ‘내 능력에 알맞게 한다. 대한민국 섬유가 다 문닫아도 우리 회사는 제일 마지막으로 문닫는다.’고 말씀하시곤 했지요.
He was confident and proud to operate the company firmly without debt. 'I will adjust to my ability. I would say that even if the Korean textiles are closed, our company is the last to close.
· 착한 고집, 정도 경영 Good hearted insist, right management
고지식하게 회사 밖에 모르는 정도 경영을 하셨습니다. 명예회장님이 젊었을 때 베트남에서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벌게 되시면서 군납을 시작하셨고 프랑스 바이어를 만나서 봉제업을 시작하셨는데요. 저는 그 당시에 명예회장님께서 하시던 사업 외에 조금 더 욕심을 부리셨다면 국동이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큰 회사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명예회장님에게는 부동산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죠. IMF 위기 때 국동이 멕시코 공장을 시작할 무렵이었는데 부동산이 많이 싸길래 골프장 같은 거 사두시면 좋겠다고 말씀 드렸는데 사업하는 사람은 부동산에 눈뜨면 망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부동산 투기를 하면 기업윤리에 맞지 않는다고 제게 확실히 선을 그으셨죠. 성남 공장, 장안동 공장 등 사업에 필요한 땅만 사셨지 개인 투자 목적으로 땅을 산 적이 없어요. 지금 시점에서 보면 융통성도 없고 현실감각이 없어 보이겠지만 사업가로서는 좋은 고집, 착한 고집이라고 생각합니다.

OEM 사업은 공장의 케파(Capacity)가 많아야 합니다. 국동은 공장 케파가 부족하여 바이어 오더를 못 받은 적도 있었는데 ‘회장님, 오더 많으면 하청공장으로 빼서 하시죠’ 라고 조언하면 바이어한테 신용을 잃어서 안 된다고 매번 거절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바이어는 공장만 잘 지어놓으면 오게 되어 있어’, ‘나는 일선에서 손 떼면 해외 다니면서 공장이나 보러 다닐 거야’ 라고 말씀하시곤 히셨죠.
He ran his business in earnest. When he was young, he started coming into the army making money from his business in Vietnam. He met French buyers and started a sewing business. It is regrettable that Kukdong would have become the largest company in the country if he had been greedier than he had ever done at that time.

The former chairman has no real estate. It's a sad part. At the time of the IMF crisis, he said, " At the time of the crisis, when I started to build a factory in Mexico, it is cheaper to buy golf courses or something. And he made it clear to me that real estate speculation is not compatible with business ethics. He has only bought land necessary for business such as a factory in Sungnam and a factory in Jangandong. Although it may seem inflexible and unrealistic at this point in time, I think it is a good businessman's insistence, a good one.

The OEM business requires a lot of factory capacity. Kukdong once failed to receive a buyer order because of insufficient factory capacity because he could not lose credit. He used to say, ' they'll be here if the factory is built well. '
· 철저한 공사 구분 keep it's private and public life separate
회사 돈과 개인 돈, 공사의 구분이 뚜렷해서 법인카드와 개인카드의 사용을 명확히 분리하셨습니다. 일선에서 물러나시고 인도네시아 스마랑 해외법인에 나가 계실 때 법인카드를 안 쓰고 개인카드를 쓰셨어요. 종종 귀국 하시면 경영 관리팀에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주시고 개인적으로 쓴 거 없는지 체크해 보라고 하셨을 정도로 철두철미 하셨습니다. 성실 납세 포상도 여러 번 받으셨죠. 저는 명예회장님이야말로 정말 이 시대의 대표적인 청렴상(像)이라고 생각합니다.
He has clearly separated the use of corporate and personal cards. When he left the front lines and worked for Indonesia's Semerang International, he used a personal card instead of a corporate card. Often he was thorough enough to give the management team the details of his use of corporate cards when he came back, and to check if he had written anything personally. He's been awarded a series of sincere tax rewards. I think the former chairman is really the most upright man in our day.
· 겸손Humility
명예회장님께선 무엇보다 겸손하셨습니다. 제가 명예회장님덕분에 돈도 벌었고 형편도 좋아졌고 아이들 시집학교 다 잘 보냈습니다, 늘 감사하다고 말씀 드리면 아마 보통 분들 같으면 ‘어, 그래. 잘 했어’ 이렇게 말하고 말았을 텐데 ‘응, 아니야. 석사장 때문에 국동이 여기까지 왔어. 내가 고맙지’ 라고 하셨습니다. 보통사람들이 할 수 있는 얘기는 아니죠. 명예회장님위치에서 볼 때 저는 한낱 협력업체인데 그렇게 말씀하시는게. 돈도 많고 사회적 지위도 있는 분인데 일개 업체한테 그런 말씀을…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동안 업계 빅3를 포함하여 10여 군데 회사를 거래해 왔지만 명예회장님같은 분을 본 적이 없습니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자서전을 준비할 때도 그 사실을 아시고는 당신이 자서전을 쓸 자격이 있냐고 처음에는 거절하셨습니다. 겨우 설득해서 인도네시아에서 인터뷰를 했는데 딱 한 번 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The former chairman was humble. When I say, " Well, thanks to the former chairman, I've made a fortune and I've spent my children's poetry school well", and he always say, " Oh, well. Well done. Kukdong came this far thanks to you. I appreciate it." It's not something ordinary people can say. From the position of the former chairman, I'm just a partner. He has a lot of money and social status, and I don't think anyone can say that to a single company. I have done business with 10 different companies, including the big three in the industry, but I've never seen anyone like the former chairman.

When he was preparing his autobiography the other day, he knew about it, and at first he refused to write it. I managed to persuade them to do an interview in Indonesia, but they only did it once.
· 배려Consideration
명예회장님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도 컸습니다. 50년 동안 직원 수천 명 중 단 한 명도 먼저 내보낸 적이 없는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회사에 큰 손실을 줬어도 먼저 해고하지 않고 기회를 주셨어요.

돌아가실 때도 혼자서 남들에게 피해 안 주고, 연휴에 돌아가셔서 회사 업무에 지장 없게 하셨습니다. 그 분 성격답게 마지막을 깔끔하게 마무리 하신거죠. 참 인격적인 분이셨고 마음이 고운 분이셨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내’가 아니라 ‘우리’라고 말씀하셨어요.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다가 눈에 거슬리는 게 있으면 주인을 불러서 ‘우리 식당은 이런 점을 고쳐야 될 것 같다’고 조용히 조언해 주고 나오시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최대한 상하게 하지 않고 지적해 주셨습니다.
The former chairman was also considerate of others. None of the thousands of employees have been sent ahead in 50 years. Even if someone gave the company a big loss, he gave it a chance without firing first.

When he died, he had a very neat ending

He was a considerable person and he was very generous. He said, " We " rather than " I " everywhere. If there is anything bothering him about eating at the restaurant, he may have called in the owner and advised him to “ shall we fix this, " .
· 소탈함과 검소함 Easygoing and Frugal
소탈하고 권위적이지 않고 검소하셨습니다. 30년 된 자동차를 타셨고 30년 된 남색 콤비 재킷을 즐겨 입으셨죠. 본인 자신한테는 상당히 인색하셨습니다. 뵙게 되면 거의 매번 밥을 사주셨는데 ‘석사장, 돈 내지 말어~’ 늘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고급음식은 좋아하시지 않고 서민적인 음식을 좋아하셨는데 늘 밥풀 하나를 안 남기셨죠. 참 훌륭하고 인간적으로 정말 존경할 만한 어른이라고 느낍니다.
He was not authoritarian, he was frugal. He rode a 30-year-old car and enjoyed wearing a 30-year-old navy combination jacket. He was very mean to himself. He has bought me meals almost every time I meet him. He doesn’t like gourmet foods, but he doesn't always leave any rice behind. I feel like he is a wonderful, respectable adult.
· 개인적인 에피소드 Personal Episode
평소 자주 찾아 뵈었고 돌아가셨을 때 제가 직접 조사(弔詞)도 했습니다. 나이 차이가 15년 나지만 아버님이라고 생각하면서 모셨고 의지를 많이 했습니다. 저희 가족들도 국동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고 모두 고마워하고 있어요. 뵙고 싶어지면 산소에 종종 찾아갑니다.

39살에 내가 장로가 되었을 때 교회에 오셔서 축하해 주셨습니다. 저는 제사도 안 지내고 산소에 가서도 절을 안 하는데 명예회장님이 부모님 산소에까지 절을 안 하는 것은 잘못된 거다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부모님 묘소와 나중에 돌아가시면 명예회장님 묘소에는 절을 하겠다고 약속을 드렸고 지금도 그 약속을 지키고 있습니다.

43년 동안 뵈면서 한번도 섭섭하고 감정 상한 적이 없었습니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나와의 관계를 떠나서 보더라도 존경 받기에 충분한 참 어른이시지요.
I used to visit him often and even after he died. I thought he was my father and I had a lot of will. My family is all grateful to him for coming here because of Kukdong. I often visit his grave when I miss him.

When I became an elder at 39, he came to church to congratulate me. I don't hold rituals and worship even when I go to grave, but the former chairman said it's wrong not to bow to my parents ' graves. So I promised to bow to the grave when the former chairman dies and I still keep that promise.

I haven't felt sorry for him in 43 years. I always appreciate him. He's good enough to be respected.